레터를 쓰는 오늘의 장소는 양평에 위치한 이함캠퍼스입니다. 예전부터 오고 싶었던 이함캠퍼스. ‘사물의 시차’ 전시를 무려 1월에 예매해두고, 이제서야 보러왔습니다. 다행히 6월까지던 전시가 10월로 연장되었어요. 20세기 디자인 가구 전시인데요. 커리어의 방향성에 ‘디자인’을 넣게 되는 요즘, 디자인 전시라면 전부 찾아가보고 싶어요. (🙋추천하고 싶은 전시가 있나요? 여기에 알려주세요!)

     디자인 전시는 점점 많아져요. 사실 거의 10년도 더 전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디자인 전시 도슨트를 했던 경험이 있어요. 최근에 오랜만에 그 경험을 끄집어냈는데요. 국립미술관에 처음으로 생기는 디자인 상설관의 첫 전시였습니다. 상업예술, 혹은 비예술로 여겨졌던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가 얼마나 흐려지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는데요.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이제석의 작품이었습니다. 광고와 마케팅에 관심이 있다면 모두 아실 바로 그 ‘광고천재 이제석’입니다. (광고업계를 지망하는 학생들끼리는 이제석파와 박웅현파로 나뉘었던 기억이 납니다… 두 분 다 광고거장(!)이지만 방향성이 정반대라는 점에서!) 광고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말, 이미 10년 전에도 사실이었기에 그렇게 어색하거나 이상하지 않습니다.

     요즘 저는 건축 강의를 듣고 있어요. 두산아트센터에서 무료로 양질의 수업을 들을 수 있거든요. (링크) 평일에 시간 여유가 있는 분들은 꼭 들어보세요! 아트홀에서 진행되니 공간도 크고, 사람도 많아서 꼭 대학 교양 수업을 듣는 것 같은데요. 다시 공부하는 재미를 느끼기도 했어요. 저는 딱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제가 좋아하던 걸 배울 수 있는 게 너무 좋았거든요. ‘프랑스 문학과 미술’, ‘디자인론’, 이런 교양 강의를 정말 즐겁게 들었던 기억이 나요. 대학 교수님들이 하는 강의를 들을 때 가장 좋은 점은 뭐냐면, 단편적인 낱장의 정보를 나눠주는 게 아니라, 맥락을 구성하는 키를 제시해주거든요. (물론 각 정보의 질도 다르지만요.) 챗지피티가 무엇이든 답해주는 듯한 세상에 살더라도, 정보를 하나로 연결하는 맥락은 아무에게서나 얻기 어려워요.

     아웃풋레터이니 말하는 개인적인 뉴스, 대학원에 원서를 넣었거든요. 예전부터 대학원을 언젠가 가야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게 지금이라고 생각한 건 다소 충동적이었어요. 최근에 만난 새로운 사람들에게 자극을 받아 ‘나중에 무엇이 될지 생각하지 않고’ 일단 배우고 싶은 걸 배우려고요. 또 대화에서 힌트를 얻은 게 한 가지 더 있는데, ‘원서비 7만5천원이면 가능한!’ 도전이라고 생각하니 결정이 아주 쉬워지더라고요.

     지망하는 전공은 예술학과입니다. 물론 학부 때 배웠던 국문학을 대학원에서 더 공부하는 것도 항상 생각해왔지만, 지금 배우고 싶은 건 예술 전반이고, 특히 디자인에 대해서 더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요. 아웃풋레터의 아트편을 시작할 때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이 레터로 내가 예술에 얼마나 진심일지 알아보고, 또 레터의 한 시즌이 마무리될 때쯤 아직도 예술에 대해 갈증이 있다면 대학원을 가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결국 더 배우고 싶다는 쪽에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이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는 몰라도 저의 미래를 너무 틀 안에 넣어두고 생각하지 않으려고요. “~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류의 질문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무엇이 되는 걸 미리 상정하지 않고, 무언가 ‘하는 데’ 집중해보려고요. 직무 이름에 나를 끼워맞추지 않으려고 하듯이, 어떤 소속과 직책에도 나를 끼워맞추지 않고 갈 길을 찾아보려고요. 레터를 보는 탐험대원 분들은 ‘뭐하는 사람이지?’ 싶은 혼란스러움도 다 이해할 거라고 믿어요. 또, 야심차게 말해놓고 떨어져도 비웃지 않을 거라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