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studio leeufan 

왼) 이우환 ⓒstudio leeufan  오) 윤형근 ⓒpkm gallery

   한국에서 추상미술이 등장하기 시작한 건 1960년대, 전쟁 직후였습니다. 유럽과 미국에서도 각각 앵포르멜, 추상표현주의라 부르는 미술운동이 수입되었고, 마침 전후의 고통과 허무를 표현하기에 '추상미술'은 꽤 적합한 형태였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추상미술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는데요. "새로운 흐름이다!" vs "단순한 서구 모방이다!" 로 대립하는 모습이었죠. 탐험구역2에서 소개할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시에서는 당시 작가들에게 추상미술이 얼마나 새로운 별나라 신문물처럼 느껴졌을지 체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한국 고유의 추상미술을 재평가하는 분위기입니다. 단순히 특정 화풍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동양적인 정신과 철학이 담겨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 흐름에는 김창열, 박서보, 유영국 등 굵직한 작가들이 많지만요. 오늘은 딱 두 명의 화가만 주목해 보겠습니다. 이우환과 윤형근입니다. 

  

윤형근과 도날드 저드(미국의 미니멀리즘 미술가이자 비평가) ⓒPKM Gallery

베르사유궁 앞에 설치된 이우환의 '관계항-대화 X(Relatum - Dialogue X)'  ⓒchateau versailles

   이우환과 윤형근의 공통점이라면 첫째로 세계 무대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두각을 나타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우환은 일본 미술가 모임인 '모노하'의 창립 멤버이기도 했고요. 프랑스, 일본, 한국에 각각 작업실을 두고 활동했을 뿐 아니라 세계 주요 미술관 곳곳에서 이우환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죠. 2010년에는 안도 다다오와 공동설계한 이우환 미술관이 일본 나오시마에 개관했고요. 22년에는 프랑스 아를에 이우환 미술관(Lee Ufan Arles)이 문을 열었습니다.

   이우환은 파리의 베르사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특정 장소에 의미를 갖고 계획된 작품을 '장소특정적 미술(site-specific art)'라고 부르는데요. 절대왕권 아래 지어진 화려한 궁전과 정원 속 이우환의 작품은 낯설고도 조화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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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형근은 만 45세에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전쟁과 정치적 혼란기를 거치며 험난한 청년 시절을 보냈기 때문인데요. 처음 해외로 떠난 것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큰 회의를 느끼고 52세의 나이로 파리에 갑니다.

   그곳에서 윤형근은 한지를 활용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발전시켰고, 이후 장 브롤리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하며 입지를 다졌습니다. 여러 대형 회화 작품이 만들어진 시기입니다. 미국의 미니멀리즘 미술가이자 비평가인 도널드 저드와의 만남은 윤형근의 추상화를 더 성숙화하는 계기가 됩니다. 윤형근의 작품 역시 테이트모던이나 구겐하임미술관 등 유수의 세계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어요.

   두 작가의 한국적인 색채가 묻어나는 작품들이 세계적으로도 이토록 주목받았다는 점이 신기하지 않나요? 역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기 때문일까요?

   이우환과 윤형근의 또 다른 공통점이라면 마치 정신을 수양하듯이 그림을 그린다는 점입니다. 미니멀해 보이는 그들의 그림 속에는 깊은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윤형근은 화가의 인격과 정신적인 측면을 늘 강조합니다.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죠.

  "어떻게 하면 그 아름다움에 도달하느냐. 99푼까지는 인위적으로 된다 이거야. 근데 나머지 1푼은 인품에 달렸다고. 품격 있는 사람이 점 하나 찍어 주는 게 아름답지. 도적 놈이 점 하나 찍는 거하고는 그 차이가 엄청난 차이지"  (출처)

   서예를 즐겨하던 아버지의 영향이었을까요? 마치 서예의 붓을 긋는 것처럼 획 하나에도 정신적인 수양을 담고자 했습니다. '서예적 추상',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도 마치 붓글씨를 써 내려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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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환도 마찬가지로 그림에 동양적인 정신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특히 철학과 사상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하이데거, 사르트르, 미셸 푸코 등 서양 철학을 공부하면서 그림을 통해 이분법적인 서구 사상에 반하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비평과 시, 에세이도 다수 남긴 이우환은 철학가이면서 비평가이자 동시에 화가였습니다.

   중요한 키워드는 여백, 관계, 대화. 단순히 말하면 물체가 배경과 분리되어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물체와 배경이 '대화'를 주고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작품 제목도 '대화(dialogue)'죠!) 그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이우환의 작품은 특정 공간에 설치되며 의미를 가지는 경우도 많았는데요. 베르사유 궁전이나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처럼요. 

이번 레터, 사실은 두 전시를 추천하기 위해 쓰였어요! 전시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빠르게 다녀오길 추천합니다 :)

   앞서 잠시 예고했던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입니다. 인풋탐험대 단골 미술관 MMCA(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진행하고 있는데요. 한국 추상미술의 흐름을 개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에 추상미술이 도입되던 시기의 풍경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이상의 시와 미츠코시 백화점의 입면도라든지, 추상화가 표지 디자인으로 쓰인 당대의 잡지, 달 착륙에 대한 뉴스 등 시대상을 보여주는 자료가 풍부해 좋았습니다. 추상화가 그림 한 점 한 점을 보았을 때는 해석하기 어렵더라도, 시대적인 맥락이 이해를 도와줄 수 있어요! 당대 가장 새롭고 트렌디한 문화로서 추상미술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보러가기

   윤형근의 파리 체류기에 대해 잠시 언급했습니다. 삼청동 PKM 갤러리에서 진행하는 윤형근의 개인전은 파리에 머무르던 당시의 작품을 다루고 있어요. 1980년 처음 파리로 떠나 한지와 '천지문'의 철학을 바탕으로 회화관을 발전시키던 시기를 1차, 장 브롤리에서 인연을 맺고 개인전을 진행하며, 대형 회화를 위주로 작업했던 시기를 2차 파리 시기로 보는데요. 두 시기에 윤형근의 작품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내 미공개 작품도 소개한다고 하니 무척 기대가 됩니다!

ⓒdenancemichel  ⓒmerit_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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