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웃풋 레터 9호 : 노마드워킹의 환상

2024. 9. 16.

+ 아웃풋에 관한 이야기 +

노마드워킹의 환상

야외 자리가 좋습니다 (w/인사하는 알린)

스타벅스에 아침 메뉴가 많아요

오늘 레터를 쓰는 장소는 미국의 스타벅스입니다. 일주일 정도 미국에 오게 되었거든요. 아침을 먹을 겸 스타벅스에 노트북을 들고나왔어요. 이 동네의 대부분이 호텔과 리조트라, 호텔 1층에 딸린 카페를 주로 이용하고 있는데요. 사실 일하는 환경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ㅎㅎ) 여태 일하기 가장 나은 곳은 머무르는 호텔의 라운지와 수영장이었는데요. 라운지는 다소 붐비지만 콘센트가 있어 좋았고, 수영장은 비록 햇빛에 눈이 부시지만, 사람이 적고 에어컨 대신 자연 바람을 맞으니 실내보다 훨씬 좋습니다.

노마드워킹에 대한 환상은 항상 이런 식인 것 같습니다. 맥북을 들고 전 세계의 스타벅스에 앉아 빵과 커피와 함께 글을 쓰는 삶을 ‘로망’했던 것 같은데, 실제로 그런 상황에 있을 때는 현실적인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카페에는 노숙자가 들어왔다가 쫓겨나고, 직원은 썩 친절하지 않았고, 충전할 곳도 마땅치 않아요. 일하기 좋은 환경을 찾는 것은 역시 어렵습니다. 곧 포기하고, 일단 어디든지 앉아 급한 일부터 하게 되죠.

환상과 현실이 다를 때, ‘지금 이게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고민도 불쑥 생깁니다. 해야 할 일을 저버리고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살고 있는 걸까? 불가능한 조건을 꿈꾸기만 하면서 살고 있는 걸까? 철이 들지 않은 걸까? 그러나 요즘은 그 생각을 금방 떨쳐낼 방법이 생겼습니다. 주변에 저와 비슷한 가치관으로 일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두고 있거든요. 저는 요즘 <나를 보호하는 환경 만들기>에 집중하는데요. 반프리랜서가 된 이후로 자발적이든, 우연히든 저와 비슷한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데, 너무 멋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면 '이렇게 살아도 되겠구나' 하는 용기를 얻게 돼요.

우연히 가게 되었던 ‘서천 커리어 투어’가 그랬고요. 지난달에 신청한 밑미의 ‘일 기록 마을’도 그렇습니다. 살펴보니 이미 제 주변에 그런 친구와 동료들도 있었고요. 그러니까, ‘일의 형태를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장 회사에 들어가거나, 수익이 아주 크거나 하지 않더라도 여유를 갖고 ‘나의 일’을 찾아가는 거죠. 여전히 이런 이야기가 비현실적이고, 뜬구름 잡듯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맞는 일의 종류와 형태, 방식을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그것도 아주 많이)’는 제 생각엔 점점 더 확신이 생깁니다.

호텔 침대와 서브웨이 (밑미 오티 듣는 중)

수영장 앞에서 일하는 호사도 누려봅니다

팟캐스트 첫 녹음 끝

팟캐스트는 드디어 첫 녹음을 마쳤습니다! 함께하는 친구와 녹음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혼자 들어봤는데요. 제가 만든 콘텐츠는 역시 저에게 가장 재밌습니다. 시키지 않아도 만드는 모든 콘텐츠의 출발은 ‘내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걸 만드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을 음성으로 남긴다는 점이 재미있고, 또 좋았습니다. 아직 편집은 다 하지 못했고, 녹음된 음성이 다소 작아서 걱정이지만 첫 에피소드를 올리고 공유해볼게요!

현장의 인터뷰

최근 했던 가장 인상적인 프로젝트는 ‘현장의 협력업체 인터뷰’였어요. 저번 인풋탐험대 레터와도 연결되는데요. 제가 (이젠 반프리랜서로) 일하는 인테리어 회사에서는 10년에서 15년을 함께 일한 협력업체들이 있어요. 협력업체와 인터뷰하며 오래 지속해온 좋은 관계, 작업의 전문성을 드러내는 브랜드 콘텐츠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한창 공사 중인 현장에 들러 촬영도 하고, 인터뷰도 진행했습니다. 사장님들의 생각지도 못한 과거를 듣게 되는 일도,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말을 담아내는 일도 정말 재밌었어요.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현장에는 아주 오래 일한 도장(페인트) 사장님이 계신데요. 이분은 85년도에 처음 일을 시작했대요. 중동에서요. 놀라 되물으니 “그땐 다 중동에서 일했지” 하고 덤덤히 말씀하더라고요. 그러곤 예전에 상암 MBC에서 작업을 하다가 촬영을 당한 적이 있다고 고백하는데요. “뭐로 촬영하신 거예요?” 물으니 “장인”, 딱 두 글자로 대답합니다.

인상이 좋은 전기 사장님은 사실 법대 출신이래요. 호주에 갔다가 우연히 전기 일을 시작하게 됐고, 나중에 딸에게도 추천하고 싶을 만큼 이 일이 좋으시다고 해요. 전기팀 사람들은 마치 디자이너들의 사수 같아요.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안 ‘디자인의 현실적인 구현 조건’에 대해 알려주곤 합니다. 제가 현장에 가까이 오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관계죠.

이 콘텐츠에는 정말로 욕심이 나요. 잘 만들고 싶고, 잘 담아내고 싶어요.

서천 커리어투어

앞서 언급했던 이 커리어투어는 '그냥 하는 게 다비다’ 클럽과 소도시트래블에서 기획하고 운영한 여행이었어요. 클럽장인 다비님과의 인터뷰 인연으로 투어에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처음 듣는 서천이라는 지역도, 모임에 함께한 사람들도 너무 좋았어요. 새로운 일을 계획할 동료도 만나게 되었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게 좋았냐면요,

기록에 대해 배우게 됨 : 원페이지 노트 쓰는 법을 알려주신 희진님
막간 커리어 컨설팅 : 디자이너에 대한 애정과 존중을 콘텐츠로 구현하라고 조언해주신 소피님 (블루오션이다!)
고유성 찾기 : 기차에 나란히 앉아 가며 저의 고유함을 찾아주신 소이(젠또)님
에디터의 삶 : 동경하던 에디터와 대학원 병행의 삶을 이야기해준 소라님
그밖에도 수많은 좋은 만남들 !

서천이라는 작은 도시도 매력적이었어요. 로컬 카페 사장님의 강의도 좋았는데요. 특히, 강의가 끝난 뒤에 나누던 개인적인 이야기가 재밌었었어요. 직접 인테리어를 하게 된 과정을 이야기해 주었거든요. 오래된 목조 건물이라 그전에 쓰던 사람이 천장이 무너지지 않게 철기둥을 박아두었다는 이야기, 조선소에 다닌 사장님의 시아버지가 직접 용접해 그 기둥 사이에 디저트 바를 만들어 주었다는 이야기.

이걸 들으니, 또 새로운 일이 막 떠올랐어요. 로컬의 버내큘러 인테리어를 찾아다니는 탐방기를 쓰고 싶더라고요. 하고 싶은 일이 왜 이렇게 많은지! 하지만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오늘은 할 말이 정말 많았는데요.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해요.

이번 레터에도 ‘할 말 있어요’ 폼이 열려 있어요. 레터를 구독하는 탐험대원 분들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항상 궁금한데요. 이번 기회에 여기에 이야기를 남겨주시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 답장할게요.

할 말 있어요 🙌